보름 동안 이어진 휴일의 마지막 날, 영화 <로마의 휴일>을 봤다. 1953년 만들었으니, 67년전 영화이다. 그런데도 요즘 영화보다 더 영화다웠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은 언제봐도 멋있다.
영화 줄거리를 조금 정리하자면,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앤 공주는 왕실의 스케줄에 싫증나 거리로 도망쳐 나와 잠들었다, 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 분)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하루 밤 묵고 다음날 뜻하지 않은 로마의 휴일을 즐긴다는 이야기다.
앤 공주와 조 브래들리가 로마의 거리를 스쿠터를 타고 신나게 달리며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백미다. 위엄에 넘치는 앤 공주가 격식을 던져 버리고 로마의 거리에서 머리를 짧게 깍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은 앙증맛기 그지없다.
기자 조 블래들리는 처음에는 특종감이라며 로마의 거리에서의 앤 공주의 일탈을 몰래 카메라에 담았지만, 결국 특종을 포기하고 그녀에게 사진을 돌려주게 된다.
뭐랄까? 특종만 쫒던 기자가 지고지순한 앤 공주를 만나 순수하고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비로소 느꼈다고 할까?
로마의 휴일을 보내고 앤 공주를 돌려 보내는 그레고리 펙의 눈동자와 기자 회견장에서의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고 받는 눈길에는 다시 만나지 못할 그리움이 반짝 거리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 인생도 아마 그러하리라. 우리 인생에서 몇몇 장면들은 로마의 휴일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이별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알고 이별하든, 모르고 이별하든 말이다.
보름 동안 쉬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긴 연휴에 처음으로 요리에 도전했는데, 첫번째 작품인 닭볶음탕은 가족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내가 요리에도 재능이 있었나? 착각했던 순간이었다.
두번째 요리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였는데, 맛은 그저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면서 용기를 북돋웠다. 세번째 요리는 오늘 점심으로 한 닭 백숙이었는데, 그게 잡내도 좀 나는 것 같고 향이 이상했다. 약재 탓으로 돌리긴 했는데, 역시 요리는 어렵다.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도 요리를 잘 할줄 아는데, 누구를 위해서 요리를 한 적이 없다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인생의 행복 중의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는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껏 요리하는 즐거움도 빼 놓지 못할 것 같다. 아람어로 '아브라카다브라 Abracadabra'는 '내가 말한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말이라고 한다. 일종의 주문인 셈인데, 그 말이 맞든 안맞든, 낙관적인 쪽에 거는 것도 손해볼 것은 없을 것 같다.
앤 공주와 조 브래들리도 어쩌면 로맨틱한 로마의 휴일 날을 무의식중에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살다보면 가끔 거짓말같이 아브라카다브라를 느낄 때가 있다.
삶은 언제나 경이롭다. 오늘 저녁,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러 간다. 식구는 그냥 같이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이가 식구다.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아주 큰 행복이다. 아브라카다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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